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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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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 신년음악회에서
작성자 이현수 작성일 2015-01-09 13:25:12 조회수 1360
신년음악회에서 보고 들은 게 있어서 기대가 컸다. 연주되는 곡들도 미리 찾아 들어보았고 시간도 넉넉하게 잡아 집을 나섰다. 그러나 얼마간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로비는 우리보다 일찍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보고 싶은 사람들 중에 나타난 얼굴은 눈에 띄지 않았다. 클래식 입문 초보자라 그런 것일 테지만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제1번 라단조 작품15)보다는 중간휴식 이후 연주된 곡들이 귀에 익어 듣기 좋았는데 왈츠나 폴카 같은 곡들을 들을 때는 음악을 따라 흔들리려는 몸이 느껴져 온 몸에서 힘을 뺐다. ‘소풍 가는 기차 폴카’를 연주하는 도중 갑자기 연주자 한 사람이 ‘STOP’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일어서더니 지휘자 김대진이 연주를 중지하고 돌아섰다. 깜짝 새해인사였다. 처음 들어본 김대진의 목소리는 성악을 했어도 좋았겠다 싶은 미성이었다. ‘봄의 소리 왈츠’를 부른 소프라노 김현민의 노랫소리는 말 그대로 봄날 꾀꼬리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고, 난파소년소녀합창단이 부른 ‘트리치 트라차 폴카’도 소년소녀들이라야 가능한 맑은 소리의 제대로 된 어울림을 보여주었다. ‘라데츠키행진곡’이 연주되는 동안 객석에서 일제히 경쾌한 리듬에 맞춰 손뼉을 치고 지휘자 김대진이 단원들 사이를 돌아다니면 일일이 단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5분 가까이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는 사람들을 옆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자니 좋아하는 것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런 중에도 남들보다 먼저 객석을 빠져나가는 몇 사람이 눈에 띄었다. 주차장을 빠져나가기가 수월하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들일 것이고 현장에서 현장을 맘껏 즐기기보다 현장에 있으면서도 현장을 빠져나가는 것에 먼저 마음을 빼앗긴 이들일 것이었다. 문득 어느 해 봄, 강원도 월정사에서 본 한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여인은 탑돌이를 하는 중에도 귀에 댄 전화기를 내려놓지 않았는데 여인에게 그 순간 탑돌이는 의미 없이 되풀이되는 행위 이상이 것이 아니었을 것인데도 여인은 통화를 계속하기 위해 탑돌이를 그만두지도 통화를 잠시 미뤄두고 탑돌이에 전념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지금 바로 이곳에서’라는 명제가 불가에서만 통용되는 삶이 명제는 아닐 것이다. 일할 때는 일에 몰두해 다른 것을 잊고 쉴 때는 쉬는 것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즐길 때 역시 즐거움 그 자체에만 몰입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주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다가 로비에 선 낯익은 얼굴을 보고 반가움에 휠체어를 밀고 다가갔다. 그이도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SK아트리움을 찾기 시작한 지 열 달 만에 처음 만나는 옛 동료의 얼굴이었다. 100만 넘는 인구가 밀집되어 살아가는 큰 도시의 공연장에서 해가 바뀌는 동안 한 번도 낯익은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스트레스가 일거에 풀리는 순간이었다. 오랜 세월 일했던 자리에 세워진 공연장에서 오랜 세월 함께 일했던 동료를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났다는 것 때문에 새해 덕담을 나누고 헤어진 뒤에도 계속해서 기분이 좋았다. 2015년에는 시벨리우스와 베토벤을 만난다는 것 때문에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수원시향과 수원지역 클래식 애호가들의 변함없는 안녕과 건투를 빈다.